목록전체 글 (41)
루날리티의 메모장
봄은 해마다 제자리로 돌아오건만 나의 계절만은 해마다, 해마다 뒤처져 미처 피지 못한 것들이 먼저 시들어 가는 밤 저마다 귀로에 발길을 거두고 홀로 빈 들녘을 헤매는 그는 파리한 그림자로의 아우성으로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모를 설움을 쏟아내었으니 오래토록 사랑해 온 것들은 이제 찾는 이 없는 구전(口傳)으로 헤아리다 덧없이 흘려보낸 밤낮은 못다 피인 봄날의 화전(花前)으로 어느 품에도 닿지 못한 순정은 기억 한 점 못 새긴 부전(不傳)으로 머무르구나누군가는 찰나의 빛으로 한 시절을 누리고 누군가는 한평생 사유를 거듭하고도 한 줌의 바람으로, 다른 이의 봄에 발끝만 드리우자니 차라리 조금은 덜 깊은 생이었더라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 곁에 머물러 아득한 것 헤아리지 않은 채 웃었으리다 이따금 서슬 퍼런 바..
아스라이 사라질 듯한 기억을 되새겨 본다무심코 준 그 행복을 곱씹어 본다작은 화면을 붙들어 두고 몇 번이고 꺼내 본다조만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한 편의 각본 속 같은 대사를 계속 읽는다읽다가 한 줄씩 대본의 여백에 꿈을 넣는다미처 담아 두지 못한 장면까지 혼자 그려 본다말을 어루만져 본다흘려보내기 아까운 말을 오래 머금는다주머니 속에 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그 시간을 온전히 각인시키고 싶어몇 문장밖에 되지 않던 대본을줄이고 줄여 끝내 한 문장으로 남기려 한다아픈 시간이 다가올 때면그 대본을 덧대어 보이지 않게 막는다그러나 어느새 행간에는 아픔이 스며들고혼자 적어 넣은 장면들은 하나둘 번져 간다먼 훗날 붉게 물든 대본을 다시 펼쳐 볼 즈음이면그토록 선명히 남기고 싶었던 순간마저낡은 잉크처럼 ..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지칠 줄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 둔다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이카로스는 추락했다. 총칼의 무자비함이 드글거리는 땅 위로, 목숨은 방아쇠의 떨림보다 가벼웠고, 이념은 수천의 죽음을 매달고도 가라앉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의 숨마저 끝나지 않은 비명의 다른 이름인 곳으로. 사랑은 부를 때마다 한 겹씩 더 먼 침묵이 되어 돌아왔고, 끝내 닿지 못한 사랑을 향한 울부짖음의 무게로 그리던 세상을 깨뜨리며. 그 잔해 속에 오래전부터 깨져 있던 거울이 드러났다. 그 앞에 선 개척자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나, 거울 속의 얼굴은 수척했다. 사랑을 향해 뻗었던 손에는 미처 거두지 못한 날이 서 있었고, 올곧음을 가리키려 했던 손끝이 거울 속의 나를 겨눌 때 깨진 거울의 파편마다 그리던 세상과 잃어버린 사랑이 비쳤다. 날개가 타버린 뒤에도 태양은 그곳에 있었으나, 깨진..
병실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창가의 사내는 아팠고, 나는 잠을 잤다. 사내는 밤마다 왼쪽 손목을 움켜쥐었다. 간호사가 붕대를 풀어 보면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손목 안쪽의 피부는 다른 곳보다 희었고, 그 아래로 푸른 혈관 몇 줄기가 비쳤다. 간호사는 손가락 두 개로 맥을 짚어 본 뒤 붕대를 다시 감았다. 사내는 그동안 벽을 보고 있었다. 붕대가 다 감기면 손을 이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제야 신음이 멎었다. 병실은 건물의 북쪽에 있었다. 맞은편에는 같은 높이의 회색 건물이 서 있었다. 창문이 열두 개였는데, 어느 날에는 열한 개였다. 다시 세었을 때에는 열두 개였다. 어느 창에서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건물에 사람이 살지 않는지, 살면서도 창가에 나오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간호사는 그쪽..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